생명과학 분야 발명의 명세서 기재요건과 실시가능 요건
특정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나 일반화학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다수의 화합물을 포함하는 발명에 관한 특허출원을 함에 있어서, 실시예나 데이터를 어느 만큼 명세서에 기재하여야 하는 가 하는 질문은 지극히 중요하면서도 쉽게 하나의 정답을 낼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동일한 형태의 청구항에 대해 기재요건이나 실시가능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양의 실시예와 실험 데이터가, 관련 기술의 발달이나 다양화에 따라 달리 요구될 수 있기 떄문에, 연구자나 특허실무자의 업무를 더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명세서 기재요건 (written description)과 실시가능 요건 (enablement)은 상호 중복이 되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서로 별개의 독립적인 특허요건이기도 합니다. 명세서 기재요건은, 출원 시점에 (pre-AIA에서는 발명시점에) 발명자가 청구항에 기재된 발명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요건입니다. 그래서, 청구항이 넓은 범위의 발명을 청구하고 있는 경우 (소위 “genus claim”), genus 발명을 대표할 수 있는 구현예가 명세서에 기재되어 있을 것이 요구됩니다. Genus 발명을 대표할 수 있는 지의 여부는, 그 genus에 속하는 species 또는 embodiments가 얼마나 다양하게 기재되어 있는 지를 검토하게 되고, 이때 청구항이 얼마나 넓은지, 그 관련 기술이 얼마나 예측가능한 기술인지, 명세서에 얼마만큼의 실시예와 정보가 기재되어 있는 지, 당업계에 알려져 있는 기술은 어느 정도 였는 지 등을 참고하게 됩니다.
한편, 실시가능 요건은 명세서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당업자가 청구항에 기재된 발명의 전 범위를 과도한 실험부담 (undue experimentation) 없이 실시할 수 있는 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고, 명세서 기재요건과 비슷하게 청구항 자체의 넓음, 기술의 예측가능성, 명세서에 얼마만큼의 실시예와 관련 정보 등이 기재되어 있는 지 등의 요소들을 참조하여 판단하게 됩니다.
보통은 관련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가 축적되면 기재요건과 실시가능 요건을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만족시킬 수 있지만, 정보가 축적되면서 관련 기술의 불예측성이 더욱 부각되는 경우에는 오히려 더 많고 다양한 실시예가 요구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아미노산 잔기가 달라짐에 따라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이 달라질 수 있고, 구조변경에 따른 기능과 효과의 차이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 되어가고 있는 항체 분야나 질병의 치료방법 발명의 경우, 출원인이 원하는 만큼의 넓은 범위의 청구항의 명세서 기재요건과 실시가능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당히 많은 양의 실시예와 실험데이터가 요구되어 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본 블로그에서는 항체를 청구하는 genus 청구항과 일반식으로 기재된 화합물을 이용한 치료방법 청구항의 기재요건/실시가능 요건에 관한 법원의 판결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2001년에 나온 미국특허청의 기재요건 가이드라인 (Written Description Guideline)에서는, 항체 청구항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완화된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즉, 항체에는 다섯 개의 class가 존재하고, 이들 항체들의 구조 및 항체-항원 결합의 기능적인 특성을 규명하는 기술 등이 잘 발달되어 있고 성숙하여 있으므로, 항원 X를 분리하여 정의하고 있으면, 그 결과로서 그 항원 X에 결합하는 일련의 항체들도 암시적으로 (implicitly)가 기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2001년 심사기준에 따르면, 명세서에 특정 항원을 기재하고 있으면, 그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의 실시예가 없어도, 그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 로 표현된 아주 넓은 청구항의 기재요건이 만족될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연방순회법원은 2010년과 2011년에 타겟 항원, competitive binding inhibition, binding affinity 등의 기능적 용어를 이용하여 정의한 광범위한 항체 청구항에 대하여, 명세서에 그런 기능을 만족시키는 항체의 구현예가 충분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명세서 기재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Ariad v. Eli Lilly (Fed. Cir. 2010); Centocor v. Abbott (Fed. Cir. 2011). 특히 Centocor 사건은 anti-TNF-α 항체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던 Centocor가 Humira®를 판매하고 있던 Abbott 에 대해 특허침를 주장하여 시작된 소송으로서, 지방법원에서는 그 당시 최고 액수의 손해배상액이 배심원의 평결로 결정되었지만, 연방순회법원에서 명세서 기재요건 불비를 이유로 하여 특허를 무효시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특히, humanized antibody 청구항에 대하여, Centocor 특허의 명세서가 mouse 항체와 mouse-human chimeric 항체만을 기재하고 있고, humanized antibody의 실시예를 기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무효판결이 내려졌습니다.
- 비슷하게, 2014년 AbbVie Deutschland v. Janssen 사건에서 연방순회법원은 명세서에 약 300개의 항체 실시예가 기재되어 있지만, 이들 모든 항체가 동일한 원조 항체 (Joe 9)를 기원으로 해서 site mutation 을 통해 물성을 개량한 항체들이기 때문에, 해리 상수로 정의된 넓은 범위의 항-IL-12 항체 청구항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효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Janssen의 제품인 Stelara® 는 카파-light chain과 VH5 사슬을 갖는 항체임에 반해, 특허명세서에 기재된 약 300여개의 항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lambda-light chain과 VH3 사슬을 갖고 있었습니다. 관련 사실들을 도식으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만약Abbvie의 명세서에 lambda-light chain이나 VH3 사슬을 포함하면서 청구항에 기재된 물성을 갖는 항체 실시예가 기재되어 있었다면 다른 판결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하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구조를 갖는 항체들을 생산하고 그 물성을 확인하는 것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한 특허출원의 성격상, 특허출원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원하는 만큼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합니다.
- 한편, 현재 연방순회법원에 항소 중인 항체 특허로는 Amgen과 Sanofi간의 anti-PCSK9 항체 사건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pitopes과 PCSK9이 저밀도 지방단백질에 결합하는 것을 차단하는 기능을 갖는 것으로 정의된 Amgen 의 항체 청구항이 기재요건과 실시가능 요건을 만족시키는 지의 여부가 이슈입니다. 이 사건은 지금 두번째로 연방순회법원에 항소중입니다. 2017년 첫번째 항소에서는, 우선권 주장일 이후의 증거를 명세서기재요건/실시가능요건을 판단하는데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지의 여부가 이슈였었고, 연방순회법원은 우선권주장일 이후의 증거도 이용할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 사건을 1심 지방법원으로 환송하였었습니다. 항소심에서 환송된 후 행해진 두번째 1심에서는, 배심원은 eipote 로 정의된 일부 청구항이 명세서 기재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하는 평결을 내렸었는데, 판사가 그 평결을 뒤집어 기재요건은 만족시키지만 실시가능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여 무효라고 하는 판결을 2019년 8월에 내린 바 있습니다. 내년 여름쯤 연방순회법원에서 epitope으로 정의된 항체 청구항의 기재요건/실시요건에 관한 보다 예측가능한 가이드가 마련될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 항체 청구항 뿐만 아니라, 2019년 10월에 결정된 Idenix Pharmaceuticals v. Gilead Sciences Inc. 사건에서, 연방순회법원은 청구항의 범위가 넓고, 기술이 예측가능하지 않으며, 당업자가 청구된 화합물들을 일일이 만들어 청구된 치료효과를 확인해야 하는데 과도한 실험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광범위한 범위의 화합물을 이용한 치료방법 청구항에 대하여 기재요건과 실시가능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Idenix 특허의 대표적인 청구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A method for the treatment of a hepatitis C virus infection, comprising administering an effective amount of a purine or pyrimidine β-D-2’-methyl-ribofuranosyl nucleoside or a phosphate thereof, or a pharmaceutically acceptable salt or ester thereof.
특히 연방순회법원은 비록 청구항에 기재된 화합물을 만들어 그 치료효과를 시험하는 것이 routine하다 할지라도 그 실험의 양이 과도하기 때문에 실시가능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판결했고, 비슷한 논리로 명세서에 수많은 구체적인 화합물이 기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세서에 기재된 화합물 실시예에 피고의 화합물이 기재되어 있지 않음에 주목하여 기재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하는 판결을 했습니다. 이는 실험의 양이 과도하더라도 routine한 것이면 실시가능 요건을 만족시킨다고 했던 종전의 판례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이어서, 출원인과 특허권자의 입장에서는 특허권의 행사에 유리하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 심사과정 뿐만 아니라 특허허여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특허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범위와 다양한 정의를 통해 청구항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항체 청구항의 경우, 타겟이 되는 항원, epitope 결합 서열, 항체 서열, 경쟁 결합 특성, 기능적 특징 등을 통해 항체를 정의하는 여러 청구항이 필요하고, 치료방법, 항체와 다른 치료물질과의 combo, 제제/dosing, 환자군의 선정, 및 제조/정제 방법 등의 청구항을 포함하는 일련의 특허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능하다면 다양한 실시예를 명세서에 기재하고 청구항의 작성에 있어서도 다양한 정의와 범위를 갖는 청구항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향후 법원에서 적정한 범위의 청구항들이 유효성을 방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Partner
Sunhee Lee
이선희 변호사는 25여년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출원 뿐만 아니라, 특허성, 침해여부, 및 Freedom-to-operate에 관한 전문가 감정의견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생명과학, 의약품, 및 재료 분야 등에서 특허출원인이 사업목적에 맞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도록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한국의 제약회사가 미국에서 진행했던 유일한 미국 Hatch-Waxman 소송인, 뉴져지 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아스트라제네카 v. 한미약품의 특허소송을 성공적으로 대리했던 소송팀의 일원이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2015년과 2016년, Thompson Reuters가 발행하는Washington DC Super Lawyers Magazine에 의해 워싱턴 DC 지역, 지식재산분야의 “Rising Stars”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변호사는 미국지식재산변호사협회 (AIPLA) – 세계지식재산보호협회 미국 지부 (AIPPI US) 운영위원회 위원이며, 아시아태평양 분과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재미한인특허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한국 start-up들이 한국과 세계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데 필요한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현장교육을 제공하고 있는한국혁신센터 (Korea Innovation Center) 워싱턴 지역의 지도자 멘토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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